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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석 [李景奭] 1595(선조 28)∼1671(현종 12). 조선 중기의 문신.
조선의 대신. 자는 상보(尙輔), 호는 백헌(白軒), 시호는 문충(文忠). 본관은 전주(全州). 종실 덕천군(德泉君) 후생(厚生)의 6대손. 진사에 합격, 1623년(인조 1) 문과에 급제, 무제학 때 청나라에서 삼전도(三田渡)에 비를 세우고 비문을 요구하므로 인조가 장유(張維)ㆍ조희일(趙希逸) 등이 쓴 글을 보냈더니 그들은 뜻에 맞지 않는다면서 다시 왕이 친히 경석에게 비문 쓰기를 권유하자 할 수없이 써서 바치고는 문자 배운 것을 개탄하였다. 이사(貳師 : 세자시강원문관(世子侍講院文官))로 선양[藩陽]에 들어가 뇌물을 바치지 않았으므로 오랫동안 봉황성(鳳凰城)에 수금되었다가 돌아와 참찬ㆍ대사헌을 거쳐 이조 판서ㆍ우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승진하였다. 효종이 즉위하자 북벌(北伐)의 뜻이 있었으나 청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왜구(倭寇)에 대비해서 성지(城池)를 수축하고 군인의 양성을 청하였다. 청나라에서 이를 북벌 계획으로 의심하고 책임을 왕에게 지우자 그는 왕은 전혀 알지 못하는 사실이며 모든 책임은 영상인 자기에게 있다고 주장하여 마침내 백마성(白馬城)에 감금을 당했다. 백마성에서 돌아와 영돈령부사(領敦寧府使)가 되어 기사(耆社)에 들어가 궤장(几杖)을 받고 사망 했다. 10년 동안 효종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아 대소사에 있어서 왕의 자문에 응하였고, 현종 때 신망이 더욱 높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경석 [李景奭] (인명사전, 2002. 1. 10., 민중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