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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암선생문집 전6권3책 (藤庵先生文集 全6卷3冊) 요약정보 및 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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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裵相龍 著
출판연도 1859년
출판사 道川書院開刊
상태 木版本 / 권1 상단부 약간훼손 (내용무관 / 사진참조)
판매가격 80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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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상세설명

6卷3冊, 四周單邊 半郭 19.5 x 16.1 cm, 有界,

10行20字 註雙行, 上下內向2葉花紋魚尾; 30.8 x 20.8 cm

刊記: 己未(1859)三月道川書院開刊
序: 完山後人柳致明謹序 


배상룡 [裵尙龍] 1574년(선조 7) ~ 1655년(효종 6)

본관은 성주(). 자는 자장(), 호는 등암(). 성주 출신. 할아버지는 사재감정() 배덕문()이고,

아버지는 영남수군절도사 배설()이며, 어머니는 자야성충순위() 야성송씨()로 송원()의 딸이다.

부인은 사재감정 신인서()의 딸이다. 정구()와 장현광()의 문인이다.

여러 차례 공거문(: ·· 등의 )이 뽑혔으나 아버지가 비명으로 죽자 과거에 응하지 않고 어머니를 봉양했으며,

동생을 열심히 가르쳐 태학에 올렸으나 일찍이 죽자 더욱더 인사()에 뜻을 잃고 몇 번 천거되었음에도 거절하였다.

또한 끝까지 자신을 추천하는 자 없이 죽기를 원하였다.

1631년(인조 9) 권대진() 등이 영남의 최현()·승려 천식()과 함께 일으키려고 했던 모역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금부도사에게 붙잡혀 추국(: 심문)을 당하기도 하였다.

1637년 천거로 선교랑의 벼슬이 내렸으나 받지 않고 임종 때 벼슬을 쓰지 말고 ‘숭정처사()’라고만 쓰라 하였다 한다.

1774년(영조 50) 통훈대부() 사복시정()에 증직되고, 1785년(정조 9) 유림들이 세운 성주의 도천사()에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등암집()』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배상룡 [裵尙龍]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